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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대학교 축제 가오나시 코스프레 후기

by algosketch 2023. 5. 12.

왜 가오나시 코스프레를 했을까?

나는 올해 8월 졸업 예정으로 이번 학기가 마지막 학기이다. 군대 2년과 대외활동 한 학기를 휴학하여 총 2년 반을 휴학했다. 지금의 평범한 일상은 매년 찾아오는 것이었지만, 반년이 지나면 더 이상 오지 않을 시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으로서의 마지막 축제인 만큼 더 특별한 일을 해보고 싶었다.

가오나시 코스프레에 대해 알아본 건, 인터넷에서 우연히 가오나시 코스프레를 한 사람의 사진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코스프레 옷을 검색해 보았을 때 부담이 되지 않는 정도의 가격(배송비 포함 1.5만원 정도)이었고, 코스프레를 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가오나시 코스프레를 하기로 했다.

생각만 한다면 시간이 흘러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것 같아 축제 기간 일주일 전에 미리 주문을 넣었다.

 

코스프레 준비

코스프레를 하기 전 컨셉을 잡았다. 때로는 감춰진 것이 더 호기심을 자극하고, 사람들로부터 흥미를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가오나시라는 캐릭터에도 더 부합하고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오나시와 관련된 유튜브를 몇 개 시청하여 가오나시에 대한 공부를 했다. 그렇다고 많이 공부한 것은 아니고... 가오나시의 특징 중 소외되었다는 것에 집중하여 두 번째 컨셉으로는 쓸쓸해 보이는 장소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으로 정했다. 물론 사진이 찍혀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람들이 지나가는 장소여야 했다.

 

가오나시로 바깥에 나오다

수업을 듣고 동아리 방에서 환복했다. 발목까지 오는 원피스 형태의 옷에 주머니가 따로 없고, 장갑 때문에 휴대폰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에는 갤럭치 워치를 차고 시간이나 급한 전화 정도만 확인할 수 있게 준비했다. 가면은 평평하여 계속 쓰다 보면 코가 아팠고, 그보다 불편했던 건 시야가 좁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숙이거나 움직이면 옷의 눈구멍 위치가 달라져 다시 조정해야 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집중되는 시선에 많이 창피했지만 금방 적응했다. 30m 바깥에서 발견하고 친구에게 공유해주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고, 지나갈 때마다 내 얘기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부스를 구경하기 위해 많이 돌아다녔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이후에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동 중일 때보다 앉아 있을 때 사람들이 더 쉽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만났던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다 합치면 아마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은 것 같다.

 

1) 외국인

가장 먼저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외국어를 하는 모습은 못 봤지만 외모나 발음으로 추측하건대, 일본이나 동아시아쪽 사람인 것 같았다. 코스프레를 한 이유가 관심을 받고 사진 찍히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을 걸어준 것이 고마웠다. 이후에도 영어권 외국인, 영어에 능숙하지만 모국어(중국어X, 일본어X, 스페인어X)는 영어가 아닌 외국인도 만났다. 말을 하지 않는 컨셉을 잡았는데 "Can you speak English?"라고 물어서 당황했지만, 외국인이랑 대화할 기회가 잘 없어서 예외적으로 말을 했다.

 

2) 더위에 공감하는 사람

특히 오후 시간에 "덥겠다"라고 말하거나 "안 더우세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다. 처음엔 안 더웠지만 1~2시 사이가 정말 더웠고, 그 뒤로는 그늘 있는 곳 위주로 자리를 잡았다.

 

3)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과에요?"라는 질문인 줄 알았는데, "어디 부스에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인 것 같다. 이 꼴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행사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러고 다닐 거라고 생각하지 못 하는 것 같다. 그 외에도 "무슨 과에요?" "학생이세요?" "몇 살이에요?" 같은 질문도 받았으나 말을 하지 않는 컨셉이었고, 물어보면 손으로 7이라는 숫자(7호관 건물을 쓰는 학과)만 알려줬다.

 

4) 사진 찍고 싶지만 부끄러워하는 사람

이동 중에 "사진 찍어달라고 할까"같은 맥락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먼저 다가갈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뭔가 엿들은 것 같은 느낌도 들어서 느리게 걷는 정도로 대처했다. 그런데 보통 이런 경우에는 결국 말을 걸지 않았고, 이동 중에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은 보통 망설임 없는 사람들이었다.

앉아 있을 때에는 친구에게 등 떠밀려 와서 사진 찍으신 분도 계셨고, 멀리서 보다가 한참 뒤 근처로 와서 머뭇거리다 사진 찍고 가신 분들도 계셨다.

 

5) 갑자기 사과하는 사람

"(쳐다봐서 혹은 놀라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더 봐주세요'

 

6) 간식 주는 사람

말랑 카우를 받았으나 먹을 수도, 들고 다닐 수도 없어서 돌려드렸다. 그 뒤로는 "덥죠? 이거 드세요" 하고 쿨하게 음료수를 주고 가신 분도 계셨다. 이미 자리를 떠나셔서 돌려드릴 수가 없어서 교양 수업 듣기 전에 마셨어요.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

 

7) 손인사하는 사람

같이 손인사해주면 엄청 좋아해 주셔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8) 일어교육과/일어일문학과

가오나시와 어울리는 물건들이 있어서 그냥 적어봤다. 일어교육과 부스에는 유카타가 있었고, 일어일문학과 주점에서 사진 찍을 때는 일본 풍의 등불을 소품으로 사용했다.

 

9) 송도 주민

학교에 부모님과 함께 놀러 온 애기들도 꽤 있었다. 유모차에 탄 애기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친구도 있었다. 가오나시를 좋아하는 애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서워했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좋아하셔서 애기 사진 찍고 싶어 하셨다. 그러다 한 명을 울려버린...

 

그 밖에도 포즈 요청하는 사람, 갑자기 악수하는 사람, 친근하게 불러주는 사람, 다 가렸는데 잘생겼다고 해주는 사람, 무서워서 사진 찍자마자 도망가는 사람, 귀여워하는 사람(치과 부스에 계신 분들이 특히 좋아해 주셨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물어보는 사람 등 적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을 만났고,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상황도 연출됐다. 내 인생 최고의 인기였다. '잘생긴 사람은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후기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싶을 정도로 재밌었다. 누가 같은 코스프레를 한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내향인이지만 밝은 에너지를 많이 받아서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 이런 느낌을 표현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짧게 적었지만 정말로 재밌었다.

정신없고 시야각이 좁아서 못 보거나 못 들은 경우도 많았다. 가끔 놀라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죄송하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전혀 기분 나쁘거나 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반말이어도 친근하게 불러주거나 인사해 주고 반응해 주는 분들께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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